성적자기결정권 어떤 의미일까
성적자기결정권 어떤 의미일까
성범죄사건을 바라보며 우리는 평균인을 가정해 두고 왜 성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적 쾌감이 과연 사람마다 동일한 것일까요?
“성적인 쾌감이란 어떤 사람들에게는 강렬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것이거나 하찮을 것일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교육의 문제인가? 뉴런들이 접속되는 방식의 문제인가? 아니면 뭘까?” (소립자, 미셀 우엘백 저,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318쪽)
우리는 위의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수준의 답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인 행위에 대해 ‘처벌’은 개인에 대해 이루어질 뿐 사회적으로 어떠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개인별로 성적쾌감을 느끼는 정도와 방식 그리고 그 성적 욕구를 통제하는데 어느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고, 이를 과학적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평가 자료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위의 우엘백의 성적 쾌감에 대한 설명이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군가는 자신의 성적쾌감에 대한 욕구를 통제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야 할 수 있고, 그에 대해서 성적 쾌감을 결혼이나 연애 등의 양성화된 이성관계에서 해결해 나가지 못하거나 성매수와 같이 덜 불법적인 영역에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무엇으로 해소시켜야 할지 선뜻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개인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고, 그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방향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요. 성에 대한 소비를 권장하면서 성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려는 개인의 노력에 대해서는 비하하는 사회 그리고 그 모순점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범죄는 성에 대한 욕구의 문제로 심각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성범죄는 강요이고 폭력이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누군가의 자유의사를 강압적으로 제압하는 행위는 그 강약에 따라 부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형사처벌의 일종이며, 그 결과가 성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그 처벌의 여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성범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자기 결정권’의 특수 태양을 침해하는 범죄이고, 자기결정권이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보호의 내용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생각해 본다면, ‘성’이라는 측면에서만 행복의 추구를 강하게 보호해야 하고, ‘성’이라는 측면에서만 사생활의 비밀과 보호를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은 자기결정권 침해의 행위와 사생활의 비밀과 보호를 침해하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인지되어야 할 것인데요.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하면서 아래와 같은 판단을 하였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은 각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觀)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관계를 가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성적’이라는 표현을 제외시키고 자기 결정권이라는 단어로만 보아도 달리 내용이 변경될 만한 의미가 아닌데요. 이어서 결정에 대한 이유를 보겠습니다.
“비록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 상대 남성이 설혹 결혼을 약속하면서 성행위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혼전 성관계를 가질 것인지 아닌지는 여성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도 스스로 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간의 성문제는 기본적으로 개인 간의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범죄적인 측면보다 도덕 및 윤리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결정의 의미를 음미해 보면, ‘성범죄’는 자기결정권을 강제성을 가지고 침해하였다는 자유의 억압, 자유의지의 제압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유, 자유의지의 폭력적 제압에 대해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이 ‘성범죄 처벌’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분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데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계속 보면,
“그러나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城)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그 평가는 전혀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야 한다. 성의 순결성을 믿고 있는 여성에게도 상대방을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엄숙한 혼인의 다짐 앞에서는 쉽사리 무너질 수 밖에 없다. 혼인을 빙자하는 이와 같은 교활한 무기에 의한 여성의 성에 대한 공략은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마땅히 형법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조심스럽기는 하나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혼인이 상징하는 의미에 비추어 ‘평생을 일심동체로 함께 하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앞세우고 이러한 전제 아래 위장된 호의와 달콤한 유혹으로 파상적 공세를 취하여 올 때, 미혼의 여성이 자신의 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교활하게도 엄숙한 결혼의 서약을 강력히 앞세우고 여성을 유혹해 언필칭 상호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이름으로 순결한 성을 짓밟고 유린하는 행위는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자유의사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후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지난 2008년 ‘위헌’결정을 하였고, 그 때 결정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당 사건 법률조항의 경우 입법목적에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첫째, 남성이 위력이나 폭력 등 해악적 방법을 수반하지 않고서 여성을 애정행위의 상대방으로 선택하는 문제는 그 행위의 성질상 국가의 개입이 자제되어야 할 사적인 내밀한 영역인데다 또 그 속성상 과장이 수반되게 마련이어서 우리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음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상대방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또한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일체를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 찍어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 및 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 된다. 결국 해당 사건의 법률조항은 남녀 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하는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6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幼兒視)함으로써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 스스로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해당 사건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 여성의 차고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형사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으며,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고, 다만 그것이 외부에 표출되어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에만 법률이 이를 규제하면 충분하며, 사생활에 대한 비범죄화 경향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고 세계적으로도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해 가는 추세이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과 기타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 기능의 약화, 형사처벌로 인한 부작용 대두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수단의 적절성과 피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따라서 해당 사건 법률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인 반면, 이로 인해 추구되는 공익은 오늘날 보호의 실효성이 현격히 저하된 음행의 상승 없는 부녀들만의 ‘성행위 동기의 차고의 보호’로서 그것이 침해되는 기본권보다 중대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하였다.
결국 해당 사건의 법률조항은 목적의 정당성이나 수단의 적절성 및 피해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성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잉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자기 결정권’에 대한 강요와 폭력에 의한 ‘자기 결정권’의 굴절에 대한 부당함을 시정해 나가는 첫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자기 결정권’은 무엇일까?’, ‘그 자기 결정권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일까?’, ‘나는 정말 인간으로서 존엄한가?’, ‘존엄하려고 노력하고 살고 있는가?’, ‘나는 타인을 존엄한 인간으로서 대접하고 있는가?’,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력과 함께 성적인 매력까지도 경쟁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