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힘, 지혜의 다른 이름 질문

 




단지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엄청난 은총일 수 있습니다.

 

주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용기와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평온의 기도>입니다.

 

법승형사변호사


이 기도문에 등장하는 바와 같은 지혜가 허락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분을 감히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인간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명상도 필요하지만 역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을 구해야 하지요.

 

지식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역시 질문만한 것이 없습니다.

질문이란 어떠한 지식을 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향타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멋진 질문은

정말로 필요한 지식을 정보의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그물과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 질문은

악용될 경우, 사람을 꽁꽁 묶고 갈고리로 꿰어 놓는 것 같이 속박을 하기도 합니다.

 

나쁜 질문의 프레임에 갇혀

고통 받는 진실을 지켜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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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이처럼

지혜로 향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며 인간만의 도구입니다.

 

질문은 언어(말과 글)를 지배하고, 나아가 삶을 지배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이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묻는 것이기도 하고, 의심되는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며,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추가로 설명해 달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질문은 인간의 특수한 능력이며

언어라는 초자연적인 인간의 교감 능력의 고도화 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경험과 환경을 가지고 모여들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도시는 고도화 되고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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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질문의 힘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에 해당하는 정보를

다수의 사람이 빠른 속도로 공유함으로써 그 도시, 그 사회는

다른 도시, 다른 사회보다 높은 수준의 지식을 향유하고,

불필요한 시행착오의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높은 지식의 기초, 고도의 정보의 체계적 전달시스템은

그 도시, 그 사회, 그 국가의 경쟁력, 시간당 생산성에 비교우위를

제공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교통망을 업그레이드 하고, 통신망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단지 가고 오고,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왜 가고, 왜 오고, 왜 전달하는지

 

그 내용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세한 정보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인지 제대로 이해해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반영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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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게 나열되어 있는

정답의 묶음으로서 교과서가 아니라

 

그 답이 어떠한 질문에서 비롯되었고,

그와 같은 질문이 왜 필요했는지 알아가는 것은 많은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정보의 공개를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진정한 학구열을 일으키고, 학습의 올바른 성취 방향을 결정하고, 일하는 자의 업무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면, 지혜란 질문에서 비롯되고, 질문은 다시 지식과 지혜를 형성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질문이 허용되는 사회는 지혜롭고 창조적이며, 반대로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모방적이고, 권위적이기 쉽습니다.

 

질문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회는 창조적인 개념설계에 인색할 수 밖에 없고, 질문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서 창조적인 개념설계가 쉽게 허용되는 유연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는 것보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해도 이해의 깊이 수준에 따라서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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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이해를 더욱 도모하기 위해서

한 줄의 문장에 대해서도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해서 인내할 수 있는 여유와 그 질문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과 문화를 향유해야 할 것입니다.

 

칠레의 대통령으로 1970년에 선출되었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이러한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경쟁자와 적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멋진 칭찬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그냥 감탄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되겠지요?

질문을 해서 이해의 깊이를 더해 봅시다.

 

아옌데는 어떠한 삶을 살았던 사람인가요?

그러한 평가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친구였나요?

경쟁자였나요?

적이었나요?

경쟁자와 적을 제대로 구분을 한 실례가 있나요? 구체적인 사례를 알고 싶습니다.

1970년대의 칠레는 어떠한 상황에 있었나요.

경쟁자와 적을 구분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요?

경쟁자와 적을 구분한다는 것이 대단한 것인가요?

적이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경쟁자가 잠재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등등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질문 본능의 싹을 자르는

교육을 하지 않도록

 

질문을 장려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함께 기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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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질문하는 사람도 좀 성의를 갖고 흥미로운 질문을 하려고 노력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문답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 더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겠지요.

 

법승형사변호사를 이끌면서

법승형사변호사들, 직원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는 대표 법승형사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많이 묻고,

어린 아이에게도 궁금하면 묻고,

그렇게 물어 물어 궁금증을 해소하고, 모르는 것을 확인해 가는 것을

공자님도 라고 하셨다고 논어에 쓰여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산파술이라는 문답법으로

지혜를 전달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평온의 기도를

이렇게 질문의 기도로 변용해 봅니다.

 

주여! 궁금하면

체면 불구하고 물어볼 수 있는 용기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아멘

 

 

 

법승형사변호사

 

Posted by 법무법인 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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