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공판과 실체진실의 발견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은 본래 우리들(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로 된 동일한 법과 제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이 자생적으로 발전시켜온 법제도가 아닙니다.
미국과 유럽 사법시스템을 일본을 통하여 수입한 것입니다.
이러한 법과 제도의 수입을 “계수”라는 단어로 씁니다.
전해 받았다 물려받았다
외국의 법을 채용했다
이렇게 멋있게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사실 다른 나라의 법을 보고 좋아 보여서 수입했다고 하거나
또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보고 좋아 보여서 모방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최근까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벤치마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위키백과의 설명을 인용해 보면,
벤치마킹(benchmarking)이란 측정의 기준이 되는 대상을 설정하고 그 대상과 비교 분석을 통해 장점을 따라 배우는 행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법과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과거에는 “계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형사소송법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유럽에서 사용하는 형사소송법을 일본이 계수하고, 다시 우리에게 강제 계수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흠모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미국의 형사소송법을 우리가
스스로 계수하는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의 행동과 말투, 태도가 참 좋아 보여서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것을 나의 것으로 가져옵니다.
생각과 의식주 같은 것들도 모방하고 흉내 내어 봅니다.
그렇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오랜 기간 동안 내 나름대로의 생각과 행동과 말투, 습관, 태도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잘 바뀌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내 가치관과 친구의 가치관이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행동과 말투, 태도라는 것은 가치관과 생각이 현실에 반영되는 것이므로
가치관과 생각이 비슷해지지 않으면 행동과 말투, 태도를 비슷하게 하기 어렵고
또 가치관과 생각이 비슷해도 키, 몸무게, 표정 등 외부 표시 요인의 차이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친구의 행동과 나의 행동이 비슷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점은 법과 제도를 수입한 사회, 국가에 많은 숙제를 안겨 줍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법과 제도를 수출한 국가와 수입한 국가의 문화와 사회 가치관이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수입한 형사소송법이 유럽과 미국의 문화에 기반 한 것인데,
우리는 사실 유럽과 미국의 가치관에 대해서 사회 전반이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고,
더군다나 유럽과 미국인들의 사고방식,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러한 결과 형사소송법이 미국법과 유럽법의 계수임에도 미국과 유럽에서 운영되는 방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규정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 문화적 저항이 존재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점차 그 사회의 일반적인(주류) 흐름으로 실무관행이 형성되어 나가게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럽, 미국의 형사소송 절차가 추구하고자 하던 검사, 판사, 변호사(피고인)의 3각 당사자 구조와 그 구조 속에서 서로 각자의 이해를 경주하면 드러나게 되는 사실을 실체 진실이라고 부르기로 한 방식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범죄의 결과가 존재하는데, 증거의 법칙이라는 유럽, 미국의 법제도의 원칙을 주장하여
피고인과 범죄의 결과의 인과관계 또는 객관적 귀속을 증거 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그 결론에 대해서 언론, 여론 할 것 없이 무지막지한 비판이 쏟아집니다.
검사의 입증 부족,
법률에서 요구하는 입증의 정도,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한 증거의 부족 등의 이유로
법관이 무죄의 판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였음에도
그 무죄의 판결에 대해서는 비난이 폭주하게 됩니다.
즉 우리 사회는 형사소송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하여 법원이 범죄를 확인하고 그에 해당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일벌백계주의가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부당하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법기관이 법원도 사회 현실적 한계에 직면하고,
법관 스스로도 이러한 사회 문화 속에서 성장한 인간으로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법관으로서의 전문성, 추리력, 판단력 등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검토하고, 검사의 제출 증거의 부족을 보충하며, 피고인의 주장의 진위에 대한 의심이 충분히 해소될 때까지 유죄의 심증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여 의심이 해소되는 부분에서 법관의 실체적 진실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입니다.
결국 법관은 심판이 아니라 피고인의 범죄를 엄격하게 확인하고 추궁하는 또 한명의 냉엄한
검찰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판에서 검사의 역할은 수동적이고, 제한적이게 됩니다.이로 인하여 피고인은 절대적으로 무죄 다툼에 있어서 검사와 판사라는 2중의 허들을 넘어야 하고, 판사가 가지고 있는 실체 진실의 확인, 즉 “피고인에게 기만당하여서는 아니된다.”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법에서 요구하는 실체진실이 우리 재판의 결론이 됩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할 때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법원이 법정에서 보는 세상은 불행히도 검사, 경찰이 그린 세상이고 법원이 평가하는 양형도 매우 불행하게도 세상 전체의 공평을 저울질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검사가 횡령, 배임으로 기소한 사건도 그 성질과 성격에 따라서 정말로 여러 가지 특수성을 가질 수 있고, 그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유죄와 무죄의 문제를 우리가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법관이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 기소를 명령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백한데,
검사가 기소한 범죄에 대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한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자료에 기초하여 사실관계를 볼 수 있다는 점과
그 증거와 자료라는 것이 실제로 검사와 경찰이 생각하는 질문에 대한 피고인의 답변으로 구성되는 것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도 있는데,
이러한 제한된 증거와 제한된 사실관계 속에서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려고 하는 그것도 그 실체 진실이 검사가 계산하고 구성한 범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확인 과정에 불과할 수 있으므로
결국은 검사의 주장이 옳은지 조각 맞추기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고,
그 조각이 어느 정도 그럴 듯 하다면
나머지 조각을 채워 넣는 것은 법관이 스스로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체의 진실이라는 것도
한편 온전하다기 보다 여러 조건 하에서 구성된 부분적 진실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형사변호사, 형사 전문 변호사로서
이러한 사회 문화적 현실과 법원의 판결 흐름 앞에 서서
문제점만 지적하여서는
우리가 원하는 무죄 판결, 영장의 기각, 감형, 집행유예, 일부 무죄 판결들을 얻을 수 없으므로 이렇게 생각하고 접근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사 공판에서 설득하여야 할 대상이자, 쟁점을 두고 다투어야 할 상대방은 법관(판사)이다. 법관은 심판이 아니라 플레잉 코치이다.
2. 증거법칙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지만 가장 법관을 자극시키는 것은 실체의 진실이 피고인의 주장에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3. 증거법칙 뒤에 숨으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주장하고 입증한다. 다만 증거법칙은 거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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